시월애

영화 일 마레(2000)는 바닷가 집을 배경으로 시간의 간극을 가로지르는 편지로 시작되는 서정적 로맨스이다. 1999년, 한 여자가 도시로 떠나면서 집 우편함에 자신의 우편을 새 주인에게 전달해 달라는 메모를 남기고, 1997년 새로 이사 온 건축가는 그 메모를 발견해 답장을 우편함에 넣는다.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던 두 사람의 편지가 우연히 이어지며, 두 해의 차이를 넘는 감정과 연결이 조심스럽게 싹틔운다.

소박한 소품과 잔잔한 영상미 속에서 영화는 외로움, 그리움, 운명 같은 감성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. 직접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손으로 쓴 편지 하나로 서로를 알아가고 위로받는 과정은 아련하고도 따뜻한 여운을 남기며, 시간의 장난과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몽환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.